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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언론보도

성웅 이순신 장군과 프란치스코 교황

제주일보

2014년 09월 01일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66962) 조회수 1677

지난 광복의 달 8월에 한국은 두 인물의 리더십으로 떠들썩했다.

 

한 사람은 영화 ‘명량’의 주인공 성웅 이순신 장군이고, 다른 한 사람은 8월 14일부터 4박5일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영화 명량은 개봉 21일 만에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1500만명이 관람한 영화가 됐다. 바다 건너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광복절 개봉 후 상영관이 계속 늘고 있다고 하니, 명량 인기가 대한민국 안팎으로 파죽지세(破竹之勢)다.

 

영화 명량으로 400년 만에 다시 살아 돌아온 이순신 장군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임금으로부터 충신의 뜻을 버림받고, 가장 믿었던 충복에게 배반 당하고, 아들에게조차 이해받기 어려웠던 그가 이기심과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들 그리고 부패하고 무능한 국가를 위해 선택한 것은 ‘조건 없는 애국심(愛國心)’이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절박한 위기에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순교’하고자 했던 선택과 용기가 오늘 우리의 역사와 민족을 있게 한 것이다.

 

제69주년 광복절에는 대통령도 언론도 순국선열의 뜻과 넋을 기억하는 데 소홀했다. 대한민국이 온통 손님 교황 맞이와 그를 향한 환호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광복절 다음 날인 16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124명의 한국 순교자가 가톨릭 복자(福者)로 추대됐다. 이들 복자는 조선교회 제사 금지령 등 가톨릭의 종지를 따르며 포교를 하다 애종심(愛宗心)의 결과로 처형당한 초기 가톨릭 신자들이다.

 

바티칸이 사제들의 추행과 비리로 끊임없는 추문에 시달리고 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 자신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며 낮은 곳으로 임하는 이미지로 12억 가톨릭 교단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방한 중에도 그는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한국의 소외된 계층들을 만났다.

 

하지만 교황이 전한 소통과 화해, 평화와 용서의 메시지에 열광하고 감동하며, 이를 되새김질 하는 여론이 이제는 깨달을 때가 된 것 같다. 손님이 오면 방을 빌려주며 극진히 대접할 수는 있어도, 집을 통째로 내어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교황은 한국에서의 아시아 포교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국가적으로 정치·경제·사회 문제들이 해결점 없는 혼란에 빠져있을 때, 의지할 바를 찾는 민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잘 봐야 한다. 그것이 애국심이 사라진 애종심으로 귀결되려 한다면, 단재 신채호 선생이 지적한 ‘노예정신’을 유념해야 한다.

 

그는 일찍이 ‘독사신론(讀史新論)’에서 우리나라에 종교가 들어오면 한국의 부처가 아니라 부처의 한국, 한국의 공자가 아니라 공자의 한국, 한국을 위한 예수가 아니라 예수를 위한 한국이 되는 것을 한탄했다. 그러면서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이것은 노예정신이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면 역사를 읽을 것이다’라고 꾸짖었다.

 

1592년 임진년 4월 14일, 한국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 중 하나인 임진왜란이 시작될 때 왜군은 십자가 깃발을 나부끼며 상륙했다. 민족의 가장 비극적인 역사가 기독교와 최초의 접촉으로 시작된 역사였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애종심이 손님을 대접하는 마음이라면, 애국심은 주인 된 마음이다. 애국심이 사라진 애종심은 한국의 고유한 정신과 전통을 송두리째 내맡기는 얼이 빠진 행위다.

 

종교가 있기 전에 나라와 민족이 있었음을 잊지 말자. 지금 대한민국의 문제 해결은 오로지 국가의 몫, 국민의 몫이다. 모든 위정자와 공직자가 깨어나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이순신 장군이 애국심을 통해 지켰던 국혼을 우리들 가슴에서 불꽃처럼 되살려야 할 때이다.  

TAG이승헌, 이순신, 프렌치스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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